잔디 정원이 있는 집이 흔치 않은 한국에서는 잔디깎이(lawn mower)라는 기계가 일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잔디 정원이 많은 곳에서는 잔디깎이가 필수다. 그런가 하면 영국에서는 잔디깎이 기계로 진행하는 레이스가 있을 만큼 의외로 흥미로운 ‘탈 것’의 대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잔디깎이의 세계 역시 혼다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영역이다.
서킷의 피트(자동차 대기 및 정비 공간)에 한 대의 탈 것이 놓여 있다. 여기에는 스파코 사의 레이스카용 스티어링휠과 트랙용 타이어가 적용되어 있다. 시트는 마치 고카트를 연상시킨다. 빨간 차체의 후측면에는 ‘HF 2622’라는 명칭이 보인다. 그리고 이 탈 것은 트랙을 내달리는 모습을 선보인다.
이 제품은 ‘민모워(Mean Mower) MK2’라고 불리지만, 실제 혼다에는 HF시리즈의 잔디깎이가 판매되고 있다. 지난 4월 6일부터 시판되는 HF2417이 대표적이다. 최고 출력 약 15hp의, 530cc V트윈 엔진을 장착한 이 잔디깎이는 8.5리터의 연료탱크를 가득 채웠을 때 2시간 연속 작업이 가능하며, 잔디 높이를 29~90㎜까지 조절할 수 있는 섬세한 성능으로 조경 전문가들에게 호평받고 있다. 깎아 낸 잔디를 수거할 수 있는 300리터의 그래스백(grass bag)도 장착되어 있다.
그러나 영상에 등장하는 HF 2622의 목적은 단지 잔디를 잘 깎는 것만이 목적이 아닌 듯하다. 이 잔디깎이에는 혼다의 고성능 모터사이클 CBR1000RR 파이어블레이드 SP1의 엔진이 장착된다. 이 엔진은 999cc의 수냉식의 직렬 4기통 엔진으로, 최고 출력 190hp(192ps, 13,000rpm)을 발휘한다.
혼다가 이런 괴짜 탈 것을 만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민모워 Mk1은 원래 2014년, 최고 속력 187km/h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잔디깎이 기계'로 인정받았다. 당시 운전대를 잡은 드라이버는 2012년 브리티시 투어링카 챔피언십의 챔피언인 고든 쉐든이었다. 그러나 1년 뒤 노르웨이의 한 제조사가 이 기록을 깼다. 이를 그냥 두고 본다면 혼다가 아니다. 이에 자극받은 혼다는 보다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 잔디깎이를 선보이겠다고 공표하기에 이른다. 전문가들의 예상으로는 이 잔디깎이의 최고 속력이 215km/h 이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혼다의 엔진 기술은 다양한 상상의 원천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특히 혼다의 엔진을 활용한 파워 이큅먼트(동력 기계)들은 자동차나 모터사이클 사업부에 종속되지 않고, 엔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다. 실제 미국에서 혼다의 파워 이큅먼트 사업부가 설립된 것은 1972년으로, 이는 혼다의 대표 차종 어코드가 공식 출시되기 4년 전의 일이었다.
혼다 파워 이큅먼트는 2010년대에 들어서며 미국 시장 내에서만 38종의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혼다가자동차뿐만 아니라 모빌리티 전반적 영역에서 미국 소비자들의 삶 전반에 녹아들었다는 의미다. 이미 혼다의 잔디깎이는 2000년대 중반 CVT 적용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 전략과 효율화, 작업자의 피로를 덜어주는 인체공학적 설계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지속 발전하고 있다. 강설량이 많은 북부 지역의 겨울에 혼다 스노우 블로워가 있다면, 온화한 남부 지역에는 혼다 잔디깎이가 대표주자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현재 미국에 판매되고 있는 혼다 잔디깎이의 라인업은 HRC, HRX, HRR, HRS등으로 나뉜다. 이동 방식은 대부분 자체 동력을 사용하지만, 낮은 사양의 경우 인력을 이용하는 방식도 있다. 가장 고가인 HRC는 1,000달러가 넘으며, 다양한 편의 사양을 갖추고 있다. 시동이 비교적 간단한 GXV160 엔진이 장착되어 있으며, 이동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크루즈 콘트롤까지 적용되어 있다. 공원이나 운동장 등 넓은 지역을 정리하기에 적합하다.
이동 HRX는 미국 현지 기준으로 평균 800달러 선이며, 2004년 처음 선보인 이래 사용법이 쉽고 작업 반경이 넓어 인기가 높다. 사용 방법도 비교적 간단한 것이 장점이다. HRR은 그보다 약간 낮은 약 700달러대다. 저렴한 사양의 경우는 인력으로 밀어서 이동하는 방식도 있으나 대부분은 자체 동력으로 이동이 가능한 방식이다. 제품에 따라 깎아낸 잔디를 담을 수 있는 그래스백이 있는 기종과 없는 기종이 구분된다.
보다 심플한 구조의 HRS는 약 300달러에서 400달러대로 부담 없는 가격을 보인다. 깎아낸 잔디는 측면의 블로워를 통해 날려보내는 방식이다. 작업 범위가 넓지 않고, 깎아낸 잔디를 날려보내도 무방한 곳 즉 면적이 그리 넓지 않은 개인 주택의 정원이나 도로변의 폭이 좁은 잔디밭 정도에서의 작업에 적당하다.
이 외에 앞서 잠시 살펴보았던 HF 시리즈는 사람이 서서 조작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넓은 지역에서 일할 때 적용된다. 주로 골프장의 페어웨이나 대규모 공원에서 적용할 수 있는 탑승용이라 할 수 있다. 혼다가 HF 시리즈를 두고 ‘속도전’을 벌이는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다. 잔디깎이 작업을 담당하는 이들은 늘 강한 태양광에 노출된다. 작업 시간이 길수록 이들의 건강은 위협받을 수 있다. 잔디깎이 기계가 빠를수록 그늘이 없는 넓은 잔디밭에서 작업하는 이들의 건강도 보장할 수 있는 셈이다.
진공청소기도 사람이 직접 조작하지 않는 무인 로봇 청소기가 있듯, 잔디깎이 기계도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미 지난 해 4월, 혼다는 로봇형 잔디깎이 미모(MIIMO)를 통해 이러한 물음에 답했다. 미모는 주로 면적이 넓지 않은 개인주택의 정원 정리용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통상 집을 자주 비우거나, 기력이 약해 직접 잔디깎이 기계를 조작할 수 없는 노령자들에게 적합한 기종이라 할 수 있다.
미모를 움직이는 것은 22.2V 전압의 리튬이온 배터리다. 이미 혼다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전기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세계 정상급의 배터리와 구동 모터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므로, 이를 잔디깎이 기계에 적용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는 배터리 용량에 따라 1.8Ah, 3.6Ah 두 종류로 나뉘는데, 충전 시간과 작동 시간은 각각 30분과 60분으로 나뉜다. 무엇보다 엔진 기반의 잔디깎이와 달리 배기가스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구성은 로봇 청소기와 거의 흡사하다. 푸시 방식으로 열리는 커버 안에는 콘트롤 패널이 수납되어 있다. 이를 통해 작업 시간을 입력할 수 있다. 미모는 전자파를 통한 주변 구역 탐색을 통해 장애물을 회피하고 파손을 스스로 방지한다. 또한 후진보다는 방향 전환 속도를 높이는 퀵 턴 방식을 적용해, 제한된 시간 안에 보다 넓은 영역의 잔디를 제거할 수 있다.
실제 작업을 진행하는 부분은 작은 RC카 같은 모양이지만 그 위를 덮고 있는 플라스틱 외형은 은은한 아이보리색으로 친근감도 준다. 마치 혼다의 이족보행 로봇인 아시모를 비롯한 혼다 로보틱스의 다양한 제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혼다의 파워 이큅먼트 제품들 중에는 한국에는 다소 생소한 제품들이 적지 않다. 잔디깎이 역시 마찬가지다. 아파트 주거가 일반화된 한국에서 직접 자신의 정원에 자라난 잔디를 정리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도 조금씩 은퇴자들을 중심으로 한 전원주택 문화가 생겨나고 있고, 넓은 규모는 아니더라도 잔디깎이 기계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것이다. 작업의 편리함과 일상의 즐거움을 함께 누리도록 하는 혼다 파워 이큅먼트의 가치는, 도로가 아닌 곳에서도 유효하다.
#잔디깎이 #잔디깎기 #잔디 #예초기 #혼다엔진 #혼다 #honda #기술의혼다 #레이스 #cbr1000r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