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의 시빅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성공적인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2년부터 반세기 가까이 대중에게 운전의 재미와 이동의 자유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평범함을 탈피한, 고유의 디자인이라는 가치를 잃지 않은 모델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에 출시된 10세대 후기형인 시빅 스포츠를 포함한 10세대 시빅은 2010년대 혼다 디자인의 정수라 할만하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혼다 시빅의 디자인 곳곳에 녹아 있는 혼다 디자인의 특징을 살펴보고, 10세대 혼다 시빅 콘셉트카의 디자이너 가이 멜빌 브라운의 메시지도 함께 소환한다.
완벽한 라인과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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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대 시빅의 콘셉트카는 2015년 뉴욕오토쇼에서 공개되었으며, 현재의 시빅은 2018년에 출시된 10세대의 페이스리프트이다. 세부 디자인은 바뀌었으나 전체적 비율은 한 세대 내에서 거의 동일하므로, 당시 콘셉트카에 구현된 디자인적 가치는 현 시점의 시빅을 살펴보는 데 있어 중요하다.
당시 뉴욕오토쇼에 선보였던 시빅 콘셉트카는 날렵한 쿠페 타입이었다. 북미 시장에서 시판 중인 시빅 쿠페의 모습을 보면 당시 콘셉트카의 특징이 거의 그대로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면에는 날카로운 헤드램프의 윤곽과 블랙 컬러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통해 구현된 솔리드 윙 페이스, 범퍼 하단의 에어 인테이크 파츠가 화제를 모았다. 또한 극단적으로 짧은 전후 오버행과 함께 거의 후륜 구동 쿠페를 연상케 하는 측면 실루엣과 후륜 펜더 측의 디자인은 자동차 산업 관계자와 대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2015 뉴욕오토쇼 당시의 시빅 쿠페 콘셉트카
당시 시빅 콘셉트카 디자인의 총책임자인 가이 멜빌 브라운(Guy Melville Brown)은 “조각처럼 날카로운 라인과 윤곽은 혼다 자동차의 향후 디자인 방향성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10세대 시빅 이후 등장한 5세대 오딧세이, 10세대 어코드, 3세대 인사이트 등의 전면 디자인과 라인을 살펴보면, 당시 가이 멜빌 브라운의 이러한 언급은 더욱 의미 있게 기억될만하다.
10세대 시빅의 이러한 라인은 양산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전장과 휠베이스의 비례감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사실 9세대 시빅과 10세대 시빅의 전장 대비 휠베이스 비율은 58%대로 비슷하다. 그러나 10세대 시빅의 전고가 1,414㎜로 극히 낮은 루프 라인을 보여준다.
여기에, 측면 비례감을 결정하는 전륜 중심선과 대시보드까지의 거리도 10세대 시빅의 비례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여기에 윈드실드와 A필러의 분리감은 9세대 시빅에 비해 보다 앞쪽으로 쭉 뻗은 인상을 구현하며, 디자인 자체에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디자인의 기본 가치는 페이스리프트를 단행한 2018년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9세대 시빅의 측면 실루엣
10세대 시빅의 측면 실루엣
가이 멜빌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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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시빅의 디자인은 제한된 사이즈 내에서 최대한의 공간을 구현하는 데 집중했던 그전까지의 동일 세그먼트 전륜 구동 세단과는 다른 디자인 감각을 구현했다. 이러한 차이에 대해 다시 돌아보기 위해서는 디자이너 가이 멜빌 브라운을 조금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다른 자동차 제조사와 달리 혼다는 디자이너나 개발자가 전면에 나서서 쇼맨쉽을 발휘하는 경우는 드물다. 가이 멜빌 브라운 역시 그러한 기조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10세대 시빅의 디자인은, 이를 가능케 했던 영감과 시각의 주인공에 대해 자연스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2015 뉴욕오토쇼에서 시빅 쿠페 콘셉트카를 소개한 디자이너 가이 멜빌 브라운
가이 멜빌 브라운은 영국 코번트리 태생의 디자이너다. 코번트리는 전성기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같은 자동차 도시로, 애스턴마틴, 랜드로버 등의 본사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그는 졸업 후 프랑스 자동차 제조사의 인턴과 이탈리아 자동차 제조사, 독일 자동차 제조사를 거쳐 2015년 혼다에 영입되었다. 그리고 유수의 자동차 디자이너들을 배출한 명문인 패서디나의 아트센터 컬리지 오브 디자인에서 강의를 진행한 바 있다.
여기까지는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 디자이너들의 일반적인 프로필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특별한 한 가지가 더 있다. 그는 한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부친의 첫 자동차가 1978년형의 시빅이었고, 그 자동차와 함께 자란 것이 특별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아버지의 차만 탔다 하면 항상 와이퍼와 오디오 버튼을 켜 아버지를 정신없게 했던 기억이 난다”며, “아버지가 ‘너 또 그러냐!’라고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시빅에 대한 추억을 전했다. 그는 이와 더불어 시빅이 전할 특별한 유산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한 점에 대한 자부심도 함께 드러냈다.
1977년 일본에서 출시된 혼다 시빅 1세대의 후기형
1977년형 혼다 시빅의 실내
10세대 시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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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빅에 대한 특별한 애정 그리고 글로벌 제조사에서 두루 쌓은 경험을 기반으로 한 그의 시빅 10세대 디자인은, 그래서 보편적인 감성과 특별한 재치가 구현되어 있다. 특히 전면부 라디에이터 그릴과 에어 인테이크 파츠의 대담한 디자인은 일종의 카리스마를 전한다. 이 콘셉트카의 전면 이미지는 페이스리프트 이후 북미 시장의 스포츠 트림에 더욱 강하게 드러났는데, 한국에 출시된 시빅 스포츠의 전면 이미지가 바로 스포츠 트림의 디자인 요소이기도 하다.
또한 가이 멜빌 브라운은 후미에 강렬한 캐릭터성을 가진 LED 테일 램프를 적용해 전면과 측면에서 구현된 로우 앤 와이드의 이미지를 한 번 더 강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기억 속 패밀리카 이미지의 시빅을 어떤 펀카에도 뒤처지지 않는 역동적인 스포츠 세단의 영역으로 옮기는 데 있어서의 마무리 작업이 바로 시빅의 후미 디자인인 셈이다.
가로 배치 FF(프론트쉽 엔진 전륜 구동) 레이아웃 실용성 면에서 우수하지만 디자인적인 매력을 구현하는 데 있어서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환경 규제는 레이아웃과 상관 없이 낮은 공기저항 계수를 충족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자동차 디자인은 엔지니어링과 동시적인 협업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파워트레인 기술도 이러한 디자인의 난제를 푸는 데 기여한다. 혼다 시빅 스포츠의 경우 1.5리터 VTEC 터보 엔진과 경량화된 CVT를 결합했다. 엔진의 위치는 보다 차체 중앙 쪽에 가깝다. 이미 혼다는 1990년대 세로 배치 FF 레이아웃 자동차도 만들어냈던 만큼, 해당 레이아웃에서 구현할 수 있는 카드는 많다. 가이 멜빌 브라운은 이러한 혼다의 기술적 역량을 기반으로 시빅의 새로운 가치를 구현해냈다. 한 명의 자동차 디자이너로서 그의 성과를 비단 혼다 시빅과 혼다 타 기종들의 디자인적 진화로만 제한할 수 없는 것은, 10세대 시빅의 디자인이 글로벌 FF 레이아웃 세단에 제시한 의미가 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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