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오딧세이가 5세대에 이르렀다. 그간 오딧세이는 다양한 국가에서 미니밴의 강자로 이름을 널리 알려왔다. 특히 미니밴은 가족이 탑승객의 중심인 만큼, 소비자들도 깐깐하게 따지고 결정하는 차종이다. 과연 오딧세이는 이러한 시장의 특성 속에서 어떻게 대처하면서 발전해왔는지 살펴본다
1990년, 혼다는 미국시장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미국으로 파견했다. 프로젝트 리더는 사야마 공장의 수석 엔지니어를 지낸 ‘쿠니미치 오다가키’였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미니밴이었다. 미니밴은 1994년 미국 내 판매량 100만 대를 넘어서는 인기 세그먼트가 됐지만, 쿠니미치 오다가키 일행이 미국에 갔을 때는 이와 같은 조짐이 있었을 뿐 시장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쿠니미치 오다가키는 미니밴이 대체하기 시작한 장르가 바로 미국식 레저를 상징하는 ‘스테이션 왜건’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즉, 미니밴이 시장의 새로운 대세가 될 가능성을 미리 읽은 것이었다.
쿠니미치 오다가키가 그리던 미니밴은 퍼스널 제트(Personal Jet), 즉 개인 전용기였다. 오딧세이의 개발명이 ‘PJ’가 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그들은 새로운 미니밴이 실제 개인 전용기처럼 다양한 편의를 갖추고, 실내에서 탑승자의 움직임도 더욱 수월하게 확보 하고자 했다. 실내 천장의 높이가 최소 1,200㎜는 되어야 한다는 것도 이러한 설계 콘셉트에서 도출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당시 미국 시장에서 경쟁 기종인 미니밴의 가격은 2만 달러 수준이었지만, 혼다는 새로운 미니밴의 소비자 가격을 3만 달러 이하로 낮추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 마저도 엔진을 새롭게 개발하는 대신, 레전드에 장착하던 V6 가솔린 엔진을 사용함으로써 개발비용을 최소화한 결과였다. 하지만 미니밴 프로젝트는 결국 무산되었다. 쿠니미치 오다가키는 본사의 자동차 개발 경영진을 미국으로 초청하고 재검토를 호소하는 등 PJ 프로젝트의 재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설득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쿠니미치 오다가키는 해당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고, 공식 업무 이외의 활동으로 미니밴 연구를 지속했다. 또한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는 중단되었지만, 경영진 측에서는 쿠니미치 오다가키의 프로젝트팀을 암묵적으로 지원한 것이 힘이 되었다. 비록 비공식적인 개발 도중 일본 경제의 ‘버블 붕괴’와 엔화 상승, 경기 침체 등의 악재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끊임없는 노력 끝에 당시 혼다의 사장이었던 ‘카와모토 노부히코’의 승인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공식적인 개발 계획으로 전환된 미니밴 프로젝트는 1991년, 오딧세이 프로토타입의 탄생으로 이어졌으며, 1992년에는 최종 단계인 시험주행까지 거쳤다. 이후 1994년 10월 20일, 마침내 1세대 오딧세이가 출시되었다.
1세대 오딧세이의 전장은 4,755㎜, 휠베이스는 2,830㎜로, 경쟁 기종대비 각각 150㎜씩 짧은 콤팩트한 차체를 선보였다. 대신 2열과 3열 시트를 2개씩만 배치해, 좌우 폭을 넓혔다. 게다가 1열을 제외한 모든 좌석을 폴딩할 수 있어, 경우에 따라 큰 짐을 싣기에도 용이했다. 특히 3열에는 측면 쿠션을 별도로 장착했다. 이는 장시간 같은 자세로 견디기 힘든 아이들을 위한 편의사양으로, 패밀리 밴으로서 오딧세이가 가진 면모를 반영한 것이었다.
엔진은 기존에 논의되었던 V6 가솔린 대신, 어코드에 장착하던 직렬 4기통 2.2리터 및 직렬 4기통 2.3리터 가솔린 엔진을 탑재해 효율을 추구했다. 두 엔진은 각각 130hp, 150hp의 최고 출력과 19.2kg·m 및 20.9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했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6인승 미니밴의 동력 사양으로서는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직렬 4기통 2.3리터 엔진을 탑재한 오딧세이의 경우 0→100km/h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9초 후반을 기록했을 정도로 준수했다. 그럼에도 고속주행 연비는 12.8km/L에 달했다. 또한 미국의 배기가스 규제까지 충족시키는 친환경적인 엔진이었다.
이 엔진의 장착은 근미래를 내다본 쿠니미치 오다가키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현재 일본에서는 대형 상용차를 제외하고는 디젤 엔진 자동차를 찾아보기 쉽지 않지만, 오딧세이가 개발되기 전만 해도 미니밴을 포함한 ‘박스형’ 자동차들의 70%이상이 디젤 엔진을 탑재했었다. 그러나 쿠니미치 오다가키는 근미래에 ‘가족과 환경’이라는 가치가 자동차 산업의 흐름을 바꿀 것이라는 점을 예측했다. 당시는 지구온난화 규제 및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에 대해 주요 선진국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와 같은 노력에 기반해 태어난 1세대 오딧세이는 출시 후 1998년에 단종될 때까지 30만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는 시빅의 최단기간 최다 판매량 기록을 앞서는 수치였다. 참고로 오딧세이는 그리스 신화 속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을 다룬 장편 서사시이자, 서양 문학사에서 모험담의 원류이다. 여행객들을 위한 자동차로서 매우 극적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1999년, 2세대에 이르러 오딧세이는 ‘벌크업’을 시도했다. 여전히 어코드와 플랫폼을 공유했지만, 오딧세이의 전장은 5,110㎜로 기존 대비 355㎜, 휠베이스는 3,000㎜로 기존 대비 170㎜ 증가했다. 덕분에 오딧세이는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 기종들과 체격이 비슷해졌다.
실내 구성에서도 다소 변화가 있었다. 2개로 구성된 2열 시트의 좌우 폭을 줄여 중앙에 통로를 확보했다. 탑승객이 3열로 이동할 때마다 2열 시트를 접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개선한 것이다. 또한, 2열의 시트는 탈착이 가능해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었다. 반면, 3열은 3명이 탈 수 있도록 재구성했다. 이는 전폭을 127㎜나 늘린 덕분에 비좁지 않게 각각의 공간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3열의 탑승객은 중앙의 시야가 넓어지는 효과를 얻었다. 또한, 3열 시트 뒤의 트렁크 공간 바닥 면의 높이를 시트보다 20cm가량 낮춰 적재능력을 향상시켰다. 이렇듯 2세대는 승차와 차량 내 이동 시의 편의성을 개선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전동식으로 작동하는 슬라이딩 도어가 채용된 것도 2세대부터다. 세대교체 전 마지막 연식인 2004년형에서는 내비게이션과 DVD를 통한 뒷좌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까지 추가해 상품성을 강화했다.
안전성 역시 빼놓지 않았다. 2001년에 단행한 페이스리프트 기종에는 커튼 에어백과 리어 디스크 브레이크 등의 안전사양을 추가했다. 차체 크기를 키운 만큼 동력성능 역시 향상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혼다는 초기형에 210hp의 최고 출력과 31.7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는 V6 3.5리터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으며, 페이스 리프트 때는 최고 출력을 240hp로, 최대 토크는 33.5kg·m로 상승시켰다. 이에 따라 변속기도 4단 자동변속기에서 5단 자동변속기로 교체했다.
충돌 안전성은 오딧세이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오딧세이는 1999년부터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이하 IIHS)의 충돌 안전성 테스트에서 G(Good, 최고 등급)을 기록해왔다. 비록 2005년 신설된 헤드레스트 및 시트 안전도 테스트에서 M(Marginal, 미흡)을 받은 바 있지만, 2008년부터는 이를 보강해 모든 충돌 안전성 테스트에서 G 등급을 획득했다.
자동차들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IIHS의 평가 항목과 기준도 함께 까다로워졌다. 2011년에는 루프 강성 테스트가 신설되었으며, 2012년에는 스몰 오버랩 테스트(차량 정면의 25%부위만 64km/h의 속력으로 충돌시키는 테스트)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4세대 및 오딧세이의 페이스리프트 기종은 테스트가 실시됨과 동시에 모두 G로 통과했다. 이러한 안전성은 혼다의 픽업트럭인 릿지라인 및 대형 SUV인 파일럿의 플랫폼을 공유한 데서 찾을 수 있다. 3세대부터 오딧세이는 바디 온 프레임과 모노코크 바디의 장점을 결합한 유니바디를 채택했는데, 기존 모노코크 바디 대비 구부러짐 강성은 20배, 비틀림 강성은 2.5배나 증가한 것이었다.
이처럼 오딧세이는 끊임없이 발전하며, 탑승자들을 위한 효율적인 ‘공간’을 연출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23년간 4세대를 이어오며 얻은 노하우가 집약된 5세대 오딧세이가 탄생했다.
외관 디자인은 시빅과 어코드, CR-V 터보 등에 적용된 바 있는 혼다의 최신 패밀리룩을 이어받았다. 솔리드 윙 페이스이라 불리는 크롬 장식은 현재 혼다 차량의 전면 이미지를 정의하는 디자인 언어다. 또한 LED는 헤드라이트와 주간주행등, 안개등,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에까지 적용되었다. 측면부의 D필러는 플로팅 루프(떠있는 지붕이라는 의미로, 필러를 검은색으로 마감해 측면 디자인에 변화를 주는 기법)를 적용해, 마치 왜건과 같은 디자인을 구현했다. 후면의 ‘C’자 형 리어 램프 역시 혼다 패밀리 룩의 일환으로, 시빅의 것과 유사하다.
편의 사양 부문에도 첨단 테크놀로지가 반영되었다. 매직 슬라이드라 불리는 기능은 2열 중앙부의 시트를 손쉽게 탈착할 수 있으며, 탈착 후 나머지 시트를 레일에 따라 전후좌우 4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는 3열 탑승객의 편의는 물론, 다양한 방법으로 실내 공간을 구현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1열의 상단부에는 HDMI 기능을 탑재한 10.2인치 모니터와 무선 헤드폰으로 구성된 리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도 적용된다. 4세대에 세계 최초로 탑재된 바 있는 내장형 진공청소기(VAC)역시 장착한다. 2열과 3열 승객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대화까지 가능한 캐빈 워치 및 캐빈 토크도 5세대 오딧세이의 대표적인 편의사양 중 하나다.
5세대 오딧세이는 차선 유지 보조 시스템(LKAS),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후측방 사각지대 경보 시스템(BSI), 추돌 경감 제동 시스템(CMBS) 등 7개의 첨단 안전사양을 구성해 반 자율주행을 가능케 하는 혼다 센싱이 탑재되고, 코너링 자세제어장치(AHA), 차체자세 제어시스템(EBD-ABS, VSA) 등의 주행안전장치를 적용했다. 또한, 노멀과 와이드 및 탑다운으로 구성된 멀티 앵글 후방 카메라을 통해, 차량 주변 사각지대의 아이들이나 장애물과의 충돌을 예방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5세대 오딧세이의 IIHS테스트는 스몰오버랩, 전면충돌, 사이드, 루프강성, 헤드레스트 및 시트 안전도, 전방충돌회피에서 ‘G’를 받았으며, 유아시트 장착 용이성 테스트는 ‘G+’를 획득했다. 유일하게 지난 2016년에 새로 도입된 헤드라이트 안전도 테스트에서만 적합하다는 의미인 ‘A’를 기록했다. 이를 종합한 총평은 최고 등급인 ‘탑 세이프티 픽+’이다.
5세대 오딧세이는 전장 5,195㎜, 전폭 1,995㎜, 전고 1,765㎜, 휠베이스 3,000㎜으로 넉넉한 실내 공간을 구현했다. 차체가 기존 대비 증가한 만큼 엔진도 강력해졌다. 284hp(6,000rpm)의 최고 출력과 36.2kg·m(4,700rp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는 V6 3.5리터(3,471cc) 가솔린 엔진은 혼다의 최신 토크컨버터인 10단 자동변속기와 결합해 파워트레인을 이룬다.
혼다의 오딧세이는 ‘가족을 위한 최고의 차량’이라는 일념으로 개발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치밀하게 진화해왔다. 덕분에 2열 및 3열 탑승객들의 편의 기능과 안전성도 점진적으로 향상되었다. 오딧세이의 전략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통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오딧세이의 가치는 만국 공통인 셈이다.
#혼다 #혼다자동차 #오딧세이 #미니밴 #승합차 #5세대오딧세이 #패밀리카 #패밀리밴 #수입밴 #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