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프론트쉽, 전륜 구동)는 재미없는 레이아웃’이라는 통념은 널리 퍼져 있다. 물론 전륜 구동 차종 중에도 스포티한 주행감각을 가진 자동차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FF 레이아웃 자동차들이 주행의 기민함보다 승차 공간의 여유와 안락감을 지향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동차에 관한 여러 가지 불문율과 상식이 정면으로 도전받고 있다. 그런 와중에 혼다는 달리고, 돌고, 서는 자동차의 기본기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매력적인 차량들을 통해 FF 세단이 재미없다는 통념을 부수고 있다.
FF 레이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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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주행을 중심으로 하는 운전자라면 ‘칼 같은’ 조향 성능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차량의 구동 레이아웃 따위는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게다가 최근 자동차들은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이 적용되어, 차축에 장착된 기어비가 속력에 따라 알맞게 변화할 수 있도록 제어한다. 또한 타이어의 성능도 우수해진 점도 레이아웃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FF 레이아웃 차량으로 고속 주행 시, 차로를 변경하거나 선회 구간을 주행할 때의 안정성 부족을 느낄 수 있다. 이는 구동륜이 조향의 역할도 겸한다는 태생적인 조건 때문이다. 쉽게 생각해서 페달이 앞에 있는 세발자전거를 탈 때, 속력을 내면서 방향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과 비슷한 원리다.
어코드 터보 스포츠
물론 안전운전을 하는 것이 최선이겠으나, 일부 전륜 구동 차량들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고속 주행 시 차로 변경 등을 시도하다가 차체 자세의 원활한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사례들은 교통사고 전문 조명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된다. 또한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정확성이 떨어지는 조향 시스템은 불안감을 느낄 수 있는 소지가 된다.
혼다가 어코드와 시빅, FF 조향의 경지 |
혼다의 어코드는 각 세대가 자동차 역사에 크게 기여했고, 돌아보면 각각 모델이 놀라움으로 기억된다. 그 대표적인 예로, 당시 상당수 자동차 마니아들의 눈길을 모은 모델이 1980년대 초반에 출시된 3세대이다. 이 모델은 이미 30여 년 전 FF 레이아웃 세단의 전후 서스펜션에 더블 위시본을 장착한 기술력이 포인트다. 위시본이란 서스펜션의 부품이 새의 가슴쪽에 있는 ‘Y’자형의 뼈(wishbone)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이것이 상하 두 개여서 더블 위시본이라 불린다.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은 상하 암의 움직임이 자유로워, 선회 시 차량의 바퀴가 지면에 대해 보이는 반응이 매우 유연하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마찰력을 구현하는 것이 장점이다.
3세대 어코드의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
현재도 그러하지만 더블 위시본 방식은 개발과 제작 비용이 높다. 최적의 역학 계산과 무게 대비 강성이 뛰어난 부품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자동차 제조사들이 모터스포츠에 투자하는 이유가 주행 시 차체에 가해지는 다양한 힘의 관계에 대한 데이터를 보다 정확히 얻기 위해서이다. 혼다가 대중적 세단에 이러한 서스펜션 시스템을 최적화할 수 있었던 것도 자동차 제조업에 뛰어든 후 불과 10년 안에 포뮬러원에서 우승을 거둘 만큼 적극적인 투자를 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혼다의 조향 성능을 상징하는 차종은 바로 2017년 4월, 독일의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7분 43초 80의 기록을 세운 시빅 타입 R이다. 2019년 들어 깨지긴 했으나 여전히 이 기록은 대단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시빅 타입 R은 최고 출력 310ps와 최대 토크 40.8kg?m를 발휘하는 2.0리터 VTEC 터보 엔진, 여기에 6단 수동변속기의 파워트레인을 적용했다. 전륜 기반 4륜 구동이 아닌 전륜 구동 방식으로만 이 정도의 동력 성능을 안정적으로 바퀴에 전달했다는 점에서 혁신이었다.
물론 시빅 타입 R은 일반적인 차량과 달리 극한의 선회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차동기어 제한(LSD) 시스템과 후륜 서스펜션에 어댑티브 댐퍼를 장착했다. 특히 LSD는 일반적인 공도 지향 차량에 적용되기 쉽지 않거나, 적용된다 해도 고가의 고성능 차량이 그 대상이다. 그러나 지면 정보를 미리 센서로 인식하고 감쇠력을 기민하게 조절해 승차감과 조향 성능을 제어하는 어댑티브 댐퍼 시스템은 서서히 보급되며 전륜 구동 세단의 조향 성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국내에 판매되는 혼다의 어코드 터보 스포츠와 하이브리드 투어링 트림에도 적용된다. 특히 현재 2.0리터급 FF 레이아웃 세단에서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는 256ps의 최고 출력을 발휘하는 어코드 터보 스포츠의 주행 성능과 조화를 이룬다. 시승으로 이 자동차를 만난 미디어 관계자들과 오너들뿐 아니라 경쟁 기종 오너들에게도 압도적 조향성능을 인정받고 있다.
최적의 조향을 위한 키, ACE 바디 |
그러나 자동차 공학 전문가들은 조향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섀시의 구조를 꼽는다. 그렇다면 좋은 섀시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외력과 충격에 견뎌야 할 부분과 유연성을 발휘할 부분이 역학적으로 최적의 조화를 이룬 섀시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불필요한 하중을 덜어내는 경량화 기술도 필수다. 혼다의 ACE(Advanced Compatibility Engineering) 바디는 그러한 조건을 만족한다.
특히 어코드의 섀시는 A, B 필러와 루프 구조 1열 쪽의 언더바디에 1,500MPa(메가파스칼)급의 초고강성 강판을 적용해 외력과 충격을 견딜 수 있도록 했다. 언더 바디는 조향의 안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여기에 고효율 조인트 프레임과 고성능 접착제를 사용하여 중량의 증가는 최소화하고 구조적 안정성은 높였다. 반면 유연성이 요구되는 연결부 등에는 600~1000MPa대의 강성을 갖는 강판을 사용해 역학적으로 최적의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이는 배기량, 성능 대비 경량화를 지향한 2.0리터 VTEC 터보엔진과 10단 자동변속기 파워트레인과 조화를 이룬다. 실제 고속 주행 시 차로 변경 등 조향에서 FF 차량이 취약한 것은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파워트레인 및 구동계 배치가 태생적 원인이 된다. 그러나 혼다는 이미 5세대의 오딧세이에 전륜 구동 차량 최초로 10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하며, 다단화 변속기 파워트레인도 무게를 덜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실제 고속 주행 조향 시 쏠림 현상은, 어코드 터보 스포츠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부분으로, 추월 가속에서는 더욱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자동차에 있어서 구동 레이아웃으로 인한 주행, 조향 특성은 쉽게 바꾸기 어려운 부분이다. 특히 FF 레이아웃은 마찰력이 약한 길에서의 직진 성능이 우수하고, 실내 공간이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무래도 고속 주행이나 선회 시에 약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혼다는 그러한 한계를 모터스포츠 등을 통해 극복해 왔고 10세대 어코드를 통해 현실화했다. 특히 어코드 터보 스포츠는 재미있는 전륜 구동 차량을 향한 혼다의 순수한 집념이 고도로 응축된 자동차라고 할 수 있다. FF 레이아웃의 세단에는 운전의 재미가 부족하다는 편견을 깨뜨리겠다는 집념이, 어코드 터보 스포츠의 고른 구동음에 녹아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