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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소식

차로 해발 4,000미터, '사서 고생'하는 이유는?

혼다코리아 2023.04.19 108

때로 모터스포츠 종목은 무모함 그 자체로 보일 때가 많다. 없는 위험도 만들어서 경험하고 넘으려고 하니 말이다. 특히 오를수록 황량한 산꼭대기로 무작정 내달려 올라가는 '힐 클라임(Hill Climb)’ 레이스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이러한 힐 클라임 레이스가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동차의 성능 개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영국의 산악가 조지 맬러리는 왜 산을 오르느냐는 질문에 “거기에 산이 있으므로”라고 답했는데, 이 단순한 답이 모터스포츠에 통용될 것 같진 않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힐 클라임 레이스에 공을 들여온 이유는 무엇이고 이를 통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기술적 장점은 어떤 것일까?

 

 

 

100여 년 역사의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 레이스,
도전 과제의 종합선물세트

 

 

모터스포츠의 역사는 자동차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힐 클라임 레이스 역시 1890년대에 최초로 시작됐고 그 무대도 전 세계적으로 다양했다. 긴 역사 속에서, 사라졌거나 현존한 그 모든 산악 레이스 중에서 가장 유명한 대회로 ‘파이크스 피크 인터내셔널 힐 클라임 레이스’(이하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를 꼽는 데 이견이 많지 않을 것이다. 산악지대로 잘 알려진 콜로라도에서 진행되는 이 대회 역시 1916년에 시작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은 모터스포츠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과제의 종합 선물세트다. 우선 코스 자체가 난코스다. 현재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의 코스는 약 20km이다. 이 구간에 코너가 156개소에 달한다. 참고로 비슷한 길이의 독일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의 코너가 154개다.

 

 

 

 

시작 고도는 2,860미터이며 최고 고도는 4,402미터다. 2011년부터는 전 구간이 포장됐으나 그전까지만 해도 비포장과 포장 구간이 혼재했다. 전체가 포장된 지금도 고도에 따라 노면 온도가 급격히 달라져 마찰력 확보가 어렵고 추락 사고가 빈발한다. 실제로 과거에는 목숨을 잃는 드라이버들도 많았다.

 

또한 워낙 고도가 높아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서 드라이버들이 고산병 증세를 호소하기도 한다. 물론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적응 훈련을 거치지만 길어도 20~30분 내의 시간에 높은 고도에 도달하므로 고통이 크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동차도 고산병을 앓는데 부족한 산소포화도로 인한 출력 저하가 그것이다. 그런 모든 악조건이 뒤섞인 대회이기 때문에 우승은 더욱 값지다.

 

 

 

파이크스 피크를 달린 혼다

 

 

많은 레이싱팀이 혼다의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을 이용해 해당 레이스에 참가해오고 있다. 차종들의 면모도 다양하고 거둔 성과 또한 의미 있다. 그러나 혼다의 R&D 부서가 직접 역량을 투입해 운영하는 사례가 더 많다. 이 대회에 투입된 혼다의 다양한 역대 차종들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 극강의 하이브리드 슈퍼카 NSX

 

 

2017년 서울모터쇼를 통해 한국 관람객들에게도 선보인 바 있는 2세대 NSX는 2010년대 중반 이후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의 단골 손님이다. 하이브리드 슈퍼카 NSX의 파워트레인 제원은 고고도의 험로를 제압하기에 알맞은 조건을 갖고 있다. 전륜 차축에 각각 36ps의 최고 출력을 발휘하는 2개의 모터, 후륜 차축에 3.5리터 트윈터보 V6 엔진과 연결되는 최고 출력 47ps의 구동 모터는 엔진의 고산병을 잊게 한다. 이 파워유닛의 합산 출력은 575ps에 달한다. 또한 후륜에 적용된 좌우륜 회전차 보정 시스템인 LSD(리미티드 슬립 디퍼런셜)은 156개의 코너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자랑한다. 또한 절묘한 토크 벡터링을 통해 조향 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2020년 8월에 열린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에서는 타임어택 1 클래스에서 10분 1초 913의 기록으로 양산 하이브리드 자동차로는 신기록을 수립했다. 이는 1년 전에 세운 10분 2초 448의 기록을 넘어선 것이기도 하며 해당 클래스 전체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 파이크스 피크에서 다듬은 혼다의 EV

 

 

혼다-e로 시작된 혼다의 EV 행보는 출발부터 완성형이다. 이는 그간 하이브리드를 통해 EV 기술을 오랫동안 다듬은 까닭이다. 그러나 혼다는 1990년대부터 하이브리드뿐만 아니라 이미 전기차에 대한 극한 테스트를 진행해왔다. 혼다의 연구원이자 여성 레이서였던 케이티 엔디콧이 탔던 EV 버전의 타입 R이 대표적이다. 엔디콧은 1994년에 15분 44초대의 기록으로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에서 전기차 클래스 우승을 기록했다. 그리고 5년 후 타입-R EV의 신형인 플러스가 다시 15분 19초대의 기록을 달성하며 주목받았다. 흥미롭게도 1999년 타입-R EV 플러스의 드라이버 테루오 스기타는 케이티 엔디콧이 탔던 타입-R EV의 미케닉 중 한 명이었다. 

 

 

1999년 파이크스 힐 클라임 전기차 부문에서 좋은 기록을 일궈낸 테루오 스기타 

 

 

■ 자연흡기 엔진의 오딧세이도 달렸다고?

 

 

오딧세이 같은 미니밴 차량에게 얼핏 레이스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험로 레이스에 참가하는 차종은 의외로 다양하며 오딧세이도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 대회에 참가한 바 있다. 2013년 대회에 출전한 4세대 오딧세이는 혼다 앨라배마 공장의 리버리를 부착하고 대회에 도전했다. 물론 공식 출전 차량은 아니었지만 12분 54초 325로 준수한 기록을 선보였다. 참고로 이 대회에는 CR-Z도 투입돼 14분 6초 446의 기록을 작성했다.

 

 

CRF부터 CBR까지, 혼다 모터사이클도 달린 파이크스 피크 

 

 

혼다 모터사이클은 2011년부터 이 무대에 많은 역량을 투입하며 존재감을 보여 왔다. 엔듀로 장르의 대명사인 CRF부터 온로드 트랙용 머신인 CBR까지 다양한 차종이 이 무대를 누볐다. 2013년 CRF는 경량급 모터사이클 클래스에서는 엔듀로 기종인 CRF 450가 10분 32초 964로 우승을 거뒀고, 2015년 CBR1000RR은 중량급 모터사이클 클래스에서 10분 2초로 우승했다. 특히 2015년 CBR의 우승은 뒤따르던 2위 차종을 15초차로 따돌렸다. 참고로 라이더는 모두 북미 모터사이클 레이스의 간판 스타인 제프 티거트였다.

 

 

2013년 CRF450으로 우승한 제프 티거트

 

2015년 CBR1000RR로 우승한 제프 티거트 

 

 

평균 고도가 해발 3,000~4,000미터에 이르는 이 대회에서 모터사이클의 참가는 모터사이클의 영원한 과제 중 하나인 주행 안정성과 드라이버의 안전 연구에 핵심적인 데이터를 제공한다. NSX를 통해 고도화된 터보 기술이 결국 혼다의 대중적 양산 차종으로 흘러오듯, 고성능 머신급의 모터사이클 기술도 일상용 모터사이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 레이스는 모터사이클의 기술 개발에도 기여하고 있다.

 

 

 

 

모터스포츠는 많은 비용이 든다. 그러나 자동차나 모터사이클의 핵심적 주행성능 확인에 있어, 이만한 장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비용은 오히려 경제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힐클라임 레이스는 일반적인 연구소와는 다른 환경을 갖고 있다. 높은 고도와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차가운 노면 온도, 낮은 산소포화도, 급격한 코너와 하중 이동 등은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모두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혼다가 여기에 본사급의 인력을 투입하는 것도 바로 이런 과제와 직접 대면하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