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의 엔진은 자동차와 선박, 항공기, 건설기계, 제설기, 예초기 등 다양한 산업 기기에 적용되어왔다. 사실 혼다의 기술 발전사 중 가장 핵임이 되는 부분은 엔진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자동차 분야의 VTEC 엔진은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청정, 고효율 가솔린 엔진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단순한 한 기의 엔진이 아니라 혼다의 철학을 상징하는 VTEC, 그 관계에 대해 알아본다.
1984년 3월, 혼다는 차세대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NCE(New Concept Engine)프로그램을 계획했다. 혼다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높은 수준의 리터당 마력과 저회전에서부터 고회전까지 이어지는 넓은 토크 밴드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혼다는 엔진 개발에 토치기 R&D센터의 이쿠오 카지타니를 책임자로 투입했다. 카지타니는 차세대 엔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주목한 것은 밸브의 타이밍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하지만 과급 없이 적은 배기량 안에서 높은 최고 출력과 최대 토크를, 그것도 넓은 대역의 엔진회전수에서 걸쳐 구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개발 과정에서 낮은 엔진회전수에서의 토크를 높이고자 시도한 밸브의 각도 변경은 타이밍 벨트와 밸브 스프링의 파손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혼다 내의 한 엔진 관련 팀이 가변 밸브 메커니즘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고, 카지타니는 이를 구체화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가변밸브 타이밍 및 리프트 전자 제어 시스템이 반영된 최초의 VTEC(Variable Valve Timing & Lift Electronic Control)엔진이다.
VTEC 이 적용된 4세대 시빅 쿠페(1989)
이는 1985년 3세대 시빅과 1세대 인테그라에 탑재되었다. 이 중 2도어 쿠페와 4도어 세단으로 출시된 인테그라의 경우 직렬 4기통 1.6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기반으로 120hp의 최고 출력을 발휘했으며, 후기형에서는 최고 출력을 130hp까지 끌어올렸다. 최고 출력만을 놓고 볼 때, 이는 현재 최신 기술로 제작된 직렬 4기통 1.6리터 엔진과 유사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1세대 인테그라
1986년 11월에는 ‘D-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혼다 R&D의 최고 경영자가 차세대 혼다를 이끌 신기술 및 보다 발전된 가변 밸브 타이밍 기술의 개발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는 1989년에 출시될 예정인 2세대 인테그라에 탑재될 예정이었다. 개발 책임은 역시 카지타니가 맡았다. 당시 엔진 최고 출력의 목표는 리터당 90hp, 즉 1.6리터로 140hp의 최고 출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카지타니는 이 수치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혼다 R&D 최고 경영자 역시 카지타니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고, ‘리터당 100hp’이라는 목표를 제안했다. 카지타니는 이를 즉시 받아들이고, 자연흡기 방식만으로 160hp의 최고 출력을 발휘하는 1.6리터 엔진 개발에 착수했다. 참고로 최신 직렬 4기통 1.6리터 자연흡기 엔진의 최고 출력도 120~140hp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는 매우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였다.
카지타니의 고민은 끝이 없었다. 당시 1.6리터 엔진은 6,800rpm에서 최고 출력을 발휘했는데,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엔진회전수를 8,000rpm수준까지 높여야 했다. 이는 엔진 내 여러 부품들의 관성력을 버티는 성능 40% 증가, 내열 증가라는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수 개월간의 토론과 고민 끝에 카지타니는 부품들의 경량화와 가변 밸브 타이밍 시스템, 흡기 밸브 직경 증가, 로우캠 각도 변경 등의 방법을 통해 최고 출력 160hp(7,600rpm)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엔진회전수의 레드라인은 8,000rpm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마니아들 사이에서 명차로 손꼽히는 S2000
이렇게 완성된 엔진은 1990년대를 상징하는 혼다의 ‘명차’들에 탑재되었다. 이 중 여전히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S2000의 경우, 직렬 4기통 2.0리터(1,997cc) 자연흡기 엔진으로 250hp의 최고 출력과 22.2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했는데, 분출시점이 무려 최고 출력은 8,300rpm, 최대 토크는 7,500rpm에 달했다. 혼다의 전설적인 스포츠카인 1세대 NSX 역시 VTEC의 수혜자라 할 수 있다. NSX는 알루미늄 바디와 미드십 레이아웃, 최고 출력 280hp(7,300rpm)와 최대 토크 30.4kg·m(5,300rpm)를 발휘하는 V6 3.2리터(3,179cc) 자연흡기 엔진을 기반으로 우수한 운동성능을 구현했다.
기본적으로 4행정 엔진은 흡입, 압축, 폭발, 배기의 과정을 거쳐 동력을 발휘한다. 이 중 ‘흡입’과 ‘배기’ 과정에서는 실린더 내에 공기를 불어넣거나 배기가스의 배출을 위해 흡기 및 배기 밸브를 여닫는 과정을 거친다. VTEC은 엔진회전수에 따라 이와 같은 흡기 및 배기 밸브의 개폐량 및 시점을 조절해, 효율과 성능을 조율하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엔진의 구조 중 다음 3가지 요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S2000의 캠샤프트
캠과 캠샤프트는 흡기, 배기 밸브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자동차의 부품 중 하나이다. 이는 실린더 내로 혼합기를 흡입시키고, 배기가스의 흐름을 제어하기 때문에 엔진의 크랭크 샤프트와 ‘박자’가 맞아야 한다. 캠샤프트가 타이밍 벨트 혹은 반영구식 체인을 통해 크랭크 샤프트와 이어져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통상 타원형으로 제작되는 캠은, 캠 노즈의 높이에 따라 하이캠과 로우캠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밸브의 개폐 정도의 차이를 의미한다. 따라서 캠 노즈의 높이는 최고 출력과 최대 토크, 연료 효율의 수치상 차이를 만들어냈다. 초기의 VTEC에는 이러한 로우와 하이 캠 2가지가 적용되어 있었다.
VTEC 엔진의 캠 움직임과 엔진 구동
가변 밸브 타이밍은 흡기, 배기 밸브를 여닫는 시점을 조정해 높은 출력과 토크, 연비를 구현하고 배기가스를 저감시킨다. 기존 가변 밸브 타이밍 테크놀로지가 개폐 시점의 조절 역할만 수행했다면, VTEC은 밸브의 개폐 시점과 흡배기의 유량을 모두를 조절할 수 있었다.
엔진은 4행정 과정을 거치는 도중, 다른 밸브가 열린다면 제대로 된 폭발력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배기가스량이 많아지는 고회전 영역에서는 의도적으로 흡기 밸브를 열어, 배기 행정을 빠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통해 높은 출력을 구현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작동 메커니즘을 밸브 오버랩이라고 한다. 다만, 저회전에서는 오히려 출력이 저하될 수 있으므로, 세밀한 조율이 과제라 할 수 있다. VTEC은 밸브 오버랩의 시점을 적절히 조절해 최고 출력의 상승과 원활한 배기의 흐름을 동시에 달성했다.
자동차 기술의 발전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VTEC도 진화할 필요가 있었다. i-VTEC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반영한 엔진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VTEC이 특정 엔진회전수를 기준으로 흡기 및 배기 밸브의 개폐량을 조절했다면, i-VTEC은 엔진회전수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즉, 운전자가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깊게 밟으면 흡기와 배기 밸브 역시 많이 열리며, 여유 있게 가속할 때에는 흡기와 배기 밸브도 그에 상응하는 만큼만 열리게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2개의 밸브 중 1개만 열리기도 한다. 덕분에 i-VTEC은 저 회전에서는 높은 연료효율을, 고회전에서는 우수한 성능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i-VTEC을 탑재한 2004년식 시빅과 CR-V의 경우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80%나 감소했다.
2007년 CR-V에 장착되었던 i-VTEC 엔진
지난 2013년 11월에는 새로운 도전 결과물도 선보였다. 10세대 어코드에 적용된 VTEC 터보 엔진이 그것이다. 해당 엔진은 최고 출력 192hp(5,500rpm), 최대 토크 26.5kg·m(1,600~5,000rpm)를 내는 직렬 4기통 1.5리터(1,498cc)급과 최고 출력 252hp(6,500rpm), 최대 토크 37.7kg·m(1,500~4,000rpm)를 발휘하는 직렬 4기통 2.0리터(1,996cc)로 나뉜다. 두 엔진에는 VTEC 기술 외에도 터보차저와 직분사 시스템, 단조 커넥팅 로드, 고강성 경량 스틸 크랭크 샤프트 등이 적용되어 우수한 내구성과 효율, 성능을 자랑한다. 이러한 동력 성능을 기반으로 어코드는 2018년 ‘북미 올해의 차’ 승용차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10세대 어코드의 2.0리터 터보 엔진. 자연흡기를 넘어 새로운 도전은 '북미 올해의 차' 수상으로 그 성과를 인정받았다
혼다는 ‘기술의 혼다’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만큼 혼다는 기술적으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해왔으며, 혁신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실제로 1980년대, 자연흡기 엔진으로서 리터당 100hp을 넘어서는 수치는, 스포츠카 제조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i-VTEC 엔진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과 결합되어 우수한 연비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자연흡기만을 고집하지 않고 터보차저를 통한 다운사이징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특히 10세대 어코드에도 탑재될 예정인 VTEC 터보가 어떠한 성능과 효율로 ‘기술’의 혼다를 대변할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다음 콘텐츠에서는 VTEC을 기반으로 완성한 혼다의 어스 드림즈 테크놀로지(Earth Dreams Technology)의 목표와 의미,
이를 적용한 차종 및 파워트레인 등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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